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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칼럼 | 언캐니밸리(uncanny valley) - 불길한 순간을 만난다면

2017.09.04 박준영  |  CIO KR
작년 10월말 구글에서는 [별이 빛나는 밤에]의 반고흐, [절규]의 뭉크가 그린 것처럼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머신러닝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고 알렸습니다. 이제 예술까지 기계가 해버리는가! 놀랍지 않을 수 없는데요. 많은 분들이 아시듯 기존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 논리를 학습시켜 자료처리 속도를 최적화를 목표로 했다면 현재 머신러닝(Machine Learning)은 자료를 학습시켜서 논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사칙연산을 게눈 감추듯 했던 컴퓨터였지만 어떤 사진이 ‘강아지’인지 ‘고양이’인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머신러닝으로 수많은 ‘강아지’ 사진 자료를 보여주고 나름의 논리를 만들어내서 어떤 사진이 ‘강아지’인지 판단할 수 있게 됐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에’를 최소한의 이미지, 곧 픽셀로 나누어서 그리는 방식을 학습했고 다른 그림도 ‘별이 빛나는 밤에’처럼 바꿀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머신러닝 소프트웨어가 있으면 이미지 변환이 가능하고, 3D 프린터만 잘 갖춰준다면 꽤나 물감을 두텁게 쓰는 반고흐의 질감 구현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럼 그 가격은 얼마나 될런지요? 누가 그린 그림이라도 할까요? 이름은 뭐라 붙일까요?

-> 르누아르, 뭉크, 반고흐 등 유명 화가의 대표 스타일로 사진을 변형한 사례

반 고흐 모조화는 비단 머신러닝만 그린 게 아닙니다. 2016년 다큐멘터리 영화 [China’s Van Gogh]는 중국 다펜 오일 페인팅 마을(Dafen Oil Painting Village)의 모조화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꼬박 며칠은 걸려 하나 완성하는 화가는 완성된 모조화에 작은 서명하나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반 고흐의 예술혼을 동경합니다. 반 고흐처럼 질감 있게 싸구려 유화 물감을 칠하고 마르기를 기다립니다. 적당히 말라서 빛에 반짝거리는 그림 한 점은 유통업자에게 2만원에 건네집니다. 그는 반 고흐 박물관이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길거리 매장에게 넘기고, 매장 주인은 한 점에 80만원을 받습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다펜의 화가는 암스테르담 여행을 꿈꿉니다. 그는 암스테르담에 가서 반 고흐 그림 보고 예술가의 영감을 얻고 싶기도, 모조화라도 그가 그린 그림이 어떤 대접을 받는지도 궁금했습니다. 몇 년을 돈을 모으고 예술혼을 모르는 가족들도 설득해서 찾아간 암스테르담. 그는 반 고흐 그림을 보고 적잖이 감동했습니다. 그렇지만 자기가 그린 그림이 반 고흐 박물관 기념품 가게에 없고 노점에서 북해의 바닷바람 맞으며 거리에 널려 있는 것을 보고 매우 실망합니다. 또한 40배가 넘는 가격 차이에 허탈함을 감주치 못합니다. 그는 줄담배를 피우며 암스테르담에 오려고 애태웠던 시간과 노력이 물감을 다 써버린 튜브 같아 복잡한 마음에 눈물을 보입니다.

어느새 그림을 사주던 고마운 유통업자는 노동의 가치를 착복하는 악덕업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예술이 무엇인가 고민하며 뜬눈으로 납기에 맞췄던 그림은 길거리 구인광고 전단보다 못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먹고 살기 위해 혹은 다펜 마을에 다른 동료들에게 그 실상을 굳이 말할 필요가 없기에 그는 묵묵히 다시 그림을 그립니다.

그에게 반 고흐 그림은 닿고 싶은 꿈이면서도 닿으면 부질없는 허상이었습니다. 그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유통업자에게 네덜란드에서는 싼 데 중국에서는 비싸게 팔리는 물건을 부탁해서 판다면 그를 과연 교활하거나 현명하다고 쉽게 말할 수 있을까요? 어떤 학자들은 이를 무역의 힘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반대편의 학자들은 세계화의 착취가 벌어진 참혹한 현장이라 합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China’s Van Gogh' 스틸 컷>

반 고흐의 진품, 머신러닝과 3D 프린터로 찍어낸 그림, 다펜 모조화가의 그림이 박물관에 걸린 장면을 상상해봅니다. 사람들은 그림들을 보고 영감을 얻을 수도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습니다. 그림을 보고 나온 사람들에게 무엇이 진품으로 보이냐고 묻거나, 이 그림은 얼마일까를 물어보기보다 그림이 3D 프린터 출력물이나 중국산 짝퉁이라고 설명해봅니다.

어떤 사람들은 머신러닝과 3D 프린팅 기술 발달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 화가도 이제 사라지겠다며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예술까지 기계가 해버리면 내 일자리는 어떻게 되는지 공포심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혹여 자기가 영감을 받았던 그림은 분명히 진품이었다며 헛기침을 할 것입니다. 내가 보는 눈이 얼마나 정확한지 침을 튀기며 변명합니다. 영화 건축학개론의 주인공이 첫 데이트에서 어깨에 힘주며 입었던 브랜드 티셔츠가 짝퉁임을 알았을 때 느껴지는 괴로움과 같겠죠. 짝퉁 그림과 티셔츠는 수많은 손길과 또는 추억과 원재료들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쓰레기취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들어가서 만약 다펜의 화가가 암스테르담의 기억에 괴로워하며 예술혼인지 광기인지 귀를 잘랐던 반 고흐처럼 오른쪽 팔을 잘라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는 더 이상 모조화를 그리지 않아도 됩니다. 줄담배를 다시 물고 눈물을 흘리다보니 다시금 그림이 그리고 싶어집니다. 요즈음 뜨거운 연구주제인 인공 팔을 그에게 이식해줍니다. 고된 연마를 통해 다시 그는 반 고흐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됩니다. 그 그림은 누가 그렸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인공 팔을 만들어낸 사람은 휴머니즘의 극치라고 평할 것입니다. 그는 인공 팔을 어떤 인간의 몸보다 더 사랑할 것입니다. 인공 팔을 밤에 죽부인처럼 끼고 잘 수도 있고 인공 팔이 작동되지 않을 때 어루만져 주기도 할 것입니다.

1970년 로봇 연구자 모리 마사히로는 로봇이 인간과 닮을수록 인간이 로봇에게 느끼는 호감도가 증가하다가 정말 인간과 비슷해지면 갑자기 깊은 공포심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깊은 공포심에 빠지는 구간을 언캐니밸리(uncanny valley)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일면 이해가 되는 부분입니다. 호러영화에서 인형이 갑자기 말을 하며 공포심을 조장한다던지 시체가 담긴 관뚜껑이 열려서 소스라치게 놀란다던지 사람의 뼈가 땅에서 나온다던지 하는 일들을 보면 언캐니밸리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그렇지만 인형은 어린 시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고마운 존재이고 장례식장에 영정사진을 보며 우리는 슬픔의 눈물을 흘립니다.

오히려 모리 마사히로가 말했던 ‘너무나 인간같아’ 두려운 언캐니밸리는 사회 문화적 다양성을 배제한 것은 아닐까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고 여겼던 사회에서 시체는 귀중한 삶의 이정표이기도 했습니다. 장의사에게 죽은 사람은 산 사람보다 더 편안한 존재이기도 합니다. 수 십 년 뒤 인간 수명연장을 위해 신체 일부분이 기계로 대체된다면 그 존재를 단순히 두렵다고 할 수 있을까요? 감정까지 갖춘 로봇과 사랑에 빠진다면 몰인간적이며 변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불길한 계곡, 언캐니밸리는 어쩌면 죽음이 곧 두렵다고 보편화하고 인간을 생물학적 존재로 단순화하면서 다른 상상력을 제거하는 너무 매끈한 논리는 아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반 고흐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이 자기만의 화풍을 가질 수 있었던 까닭에는 사진기의 발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세기 사진기 발명에 화가들은 더 이상 장면을 정확히 그려내는 사실주의 그림으로 사진기를 따라갈 수 없다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사진기가 빛을 모아서 수많은 복제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특징에 집중했습니다.

인상파 화가들은 빛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빛의 움직임에 따라 변하는 장면을 잡아냈고 복제할 수 없는 자기만의 화풍을 만들어냈습니다. 사진기와 경쟁했다기보다는 사진기를 통해 더 다양한 장면을 만들어냈습니다. 머신러닝과 3D 프린터로 만든 그림은 반 고흐 그림 하나의 모사에 불과합니다. 다펜의 화가가 아무리 반 고흐를 따라 그린다고 해도 똑같은 그림을 그려낼 수 없습니다.

어떤 학자는 사진기술로 진품과 복제품의 구분이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진품 그림 한 점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을 받고 있습니다. 머신러닝과 3D 프린팅기술, 그림 한 장에 40배 차이 나는 세계화 유통구조는 또 다른 언캐니밸리입니다. 지금은 꺼림칙할 로봇이 그려낸 그림은 훗날 인간과 인공지능이 공존하는 멋진 사례이고 또 다른 일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죽는다는 허무에 빠지기보다 일상의 소중함에 집중할 수도 있겠습니다. 불편함을 피하거나 빠져들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불편함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문화인류학자 박준영씨는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 연구원, 인사팀 과장으로 근무하고 세계여행을 다녀왔다. 연세대학교 공학, 경제학석사를 졸업하고 문화학/인류학 박사과정 중이다. 기술과 인문, 예술이 만나는 장면을 비판적으로 살펴본다. 관련 강의와 저술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walker80/)를 운영 중이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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