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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2 정철환  |  CIO KR
‘Colored Computers’… 예쁜 컬러의 노트북이나 데스크톱 PC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컴퓨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복잡한 수학 공식에 따른 계산을 담당하던 것인 사람이었다. 이들을 계산원, 즉 ‘computer’라고 불렀으며 상당수의 인원은 여성이었고 그중에는 유색인종(colored)도 있었다. 영화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는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1960년대 나사(NASA)에서 활약했던 흑인 여성 계산원들이 주인공인 영화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흑백 인종차별은 당시 미국에서 매우 심각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주인공들에게는 여성이라는 차별까지 더해져 있는 상황이었으니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러한 가혹한 현실적 장애물을 극복해야만 했던 과정을 영화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히든 피겨스'에 등장하는 나사의 휴먼 컴퓨터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지금 우리나라는 그 당시 미국의 상황과 얼마나 많이 다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미국과 같은 인종차별을 할 만한 유색인종이 거의 없다. 그래서 인종차별은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성에 대한 차별은 당시 미국과 비교해 과연 더 나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한때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는 여성이 진출하기에 상당히 적합한 분야로 알려져 있었다. 역사적으로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머로 알려진 사람 역시 남성이 아닌 여성이다. 생물학적으로 우월한 파워와 스피드와 같은 육체적인 능력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 고도의 정신적, 지적 능력만을 요구하는 프로그래밍은 여성의 섬세함과 꼼꼼한 성격과도 잘 맞는다고 여겨졌기에 많은 여성이 컴퓨터 공학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했었다. 그래서 소속이 공대인 학과 중에서 여학생의 비율이 타 공대 전공에 비해 월등히 높았던 학과가 컴퓨터 공학 쪽이기도 했다. 기업에서도 여성 프로그래머 전문인력 특채 등을 통해 별도의 전형으로 채용을 진행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 많은 여성 프로그래머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대학생의 남녀 비율은 거의 50:50인 세상에서 회사내 여성인력은 전부 어디로 사라졌는가? 2016년 조선일보의 “韓 기업 여성 임원 비율 0.4%… OECD 최하위권”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상장기업 내에서 여성 관리자의 비율은 7.1%, 임원의 비율은 1.9%라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여성의 진출이 활발한 공무원 분야에서도 고위 공무원의 여성 비율은 4.4%에 그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는 결혼과 출산이라는 여성이 감내해야 하는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이 없었다고 단정 짓기도 힘들다. 1960년대 미국의 NASA에서 벌어지던 상황이 여전히 대한민국의 기업 내에서는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면 이는 무리한 주장일까?

주요 IT 기업의 잘 알려진 CEO 중 여성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미국의 경우를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어떨까? 사실 미국도 여전히 완전한 여성 평등의 사회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한 기사에 따르면 구글의 SW 개발자 중 여성인력의 비율은 20% 정도이며 실리콘밸리 창업자 중 여성 창업자의 비율은 29%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2014년 한국 SW 개발자 현황’ 보고 자료에 따르면 개발자 중 여성의 비율은 5.4%로 연령대가 25~29세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남성의 경우 30~34세의 비율이 가장 높으며 남녀 모두 45세 이상의 비율은 거의 0%였다. 아마 ‘45세 이상의 여성 개발자’가 있다면 스스로 엄청난 자부심을 가져도 될 듯하다. 미국이 완전한 성평등을 이룬 사회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1960년대 나사의 상황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SW 개발이 애초 생각과는 달리 엄청난 체력을 요구하는 ‘막노동’에 버금가는 성격을 띠고 있고 야근도 수시로 해야 하고 주말 근무도 해야 하는 혹독한 업무라는 것이 드러난 상황에서, 여성이 체력과 상황 면에서 더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남성이라고 해서 견딜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결국, 남성과 여성 모두 견디기 힘든 근무 여건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누구도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결과물을 도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우리나라 SW 개발자의 근무 여건을 전반적으로 개선하여야 하지만 특히 여성 SW 개발자를 위해 결혼 및 출산 후에도 계속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한 소셜 분야에서의 여성 사용자 비율이 남성보다 더 높다는 조사 결과에서 나타나듯 여성의 디지털 라이프 참여도와 성숙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는 SW 개발자 부족 현상을 염려하는 기사도 종종 볼 수 있는데,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2014년을 기준으로 이미 여학생이 74.6%, 남학생이 67.6%로 여학생의 비율이 더 높게 나오고 있다. 물론 공학분야는 여전히 남학생의 비율이 월등히 높겠지만 전체적으로 여성인력의 활용이 국가적 인재 활용 차원에서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실에서 영화 ‘히든 피겨스’의 주인공들과 같은 삶을 사는 여성 SW 개발자분들을 개인적으로 알았던 적이 있다. 그분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라도 SW 개발자로 사는 인생이 순탄하지는 않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른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45세는 프로그래머의 정년에 가까운 나이이니 말이다. 하지만 멋진 여성 SW 개발자를 주위에서 접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닌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 기관사의 안내 방송을 듣게 되었는데 기관사분이 여성분이었다. 기관사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색다른 것이 아닌 것으로 인식되고 기업 내에서 여성 임원을 흔하게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면 지금보다 더 경쟁력 있는 국가가 되지 않을까? 나 역시 딸아이를 둔 부모의 입장에서 우리 아이가 차별 없는 사회에서 최선을 다해 경쟁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되길 꿈꿔본다.

*정철환 팀장은 삼성SDS, 한양대학교 겸임교수를 거쳐 현재 동부제철 IT기획팀장이다. 저서로는 ‘SI 프로젝트 전문가로 가는 길’이 있으며 삼성SDS 사보에 1년 동안 원고를 쓴 경력이 있다. 한국IDG가 주관하는 CIO 어워드 2012에서 올해의 CIO로 선정됐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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