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19

칼럼 | 디지털 반동분자들

Thornton May | Computerworld
개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기업의 디지털화 노력을 크게 방해할 수 있는 시대다. 기업이 쓸 수 있는 대처법은 과연 무엇일까?


Credit: Pixabay

오늘날 기업 다수의 고민 꺼리는 디지털 디스럽션(digital disruption)이다. 디지털 붕괴 현상의 주역이 되건 또는 피해자가 되지 않는 법을 찾고 있건 머리 한 구석에는 디지털 디스럽션이 자리하고 있다. 몇몇은 두 상황 모두에 처해있다.

그들의 직원 대부분도 같은 관점이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과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조사에 따르면, 붕괴의 주체가 되거나 붕괴로부터 살아남으려는 기업의 경우 직원의 89~97%가 디지털 붕괴/붕괴 방지 프로그램을 지지하고 있었다.

이는 엄청난 수치다. 단 3%에서 11%의 직원들만이 디지털 디스럽션 이니셔티브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들을 ‘디지털 반동분자’(digital dissidents)라고 칭하겠다.

그러나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기는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그렇지 않다. 현대 시대에 이러한 반동분자들이 가진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디지털 기술 혁명이 오히려 그들에게 힘을 실어준 경향도 있다.

사실 잠재력에 대해 생각해보면 3%가 아주 큰 숫자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뉴욕타임즈 칼럼리스트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곧 출판될 그의 책 ‘늦어서 고마워: 가속의 시대에서 성공하는 긍정론자의 가이드’(Thank You for Being Late: An Optimist’s Guide to Thriving in the Age of Accelerations)에서 이에 대해 기술했다. .

그는 이 책에서 “한 명이 가진 힘(Power of One)”이라는 용어를 언급했다. 예를 들자면 NSA에 대해 하급 계약자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해낸 일을 떠올리면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정도 붕괴를 일으키려면 NSA 국장 정도는 되어야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하급 계약자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수 있게 됐다.

기업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은 디지털 반동분자들의 힘을 상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많은 고용주들은 이를 통제할 방법을 찾고 싶어한다. 어쩌면 위협이나 부정적 인센티브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책략은 궁극적으로 부질없다는 점은 지난 2세기 동안 충분히 입증돼 왔다.

예일 대학 교수 존 메리맨(John W Merriman)은 산업혁명을 산업가(industrialists)들이 노동자들에게 원했던 대로 마음껏 일을 시킬 수 있었던 시기로 보고 있다.

가령 고급 도자기 제조 사업가 조시아 웻지우드(Josiah Wedgewood)는 산업 시대적 규율을 보다 발 빠르게 적용시킨 인물이다. 1800년 직전 그는 직원들을 항상 일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오래 고심했다. 그와 그의 동료 산업가들은 노동자들이 돌아다니고 장난치는데 시간을 쓰는 것을 막는데 아주 신경 썼다. 웻지우드의 궁극적 목표는 “두 손의 손가락들”처럼 그의 명령에 따르는 작업자들이었다.

그와 다른 산업가들은 그들의 관점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인간다음을 잃어야 했다. 이러한 사실은 19세기 디킨스(dickens)와 졸라(Zola)같은 작가들이 공장과 탄광의 비인간성에 대해 기술한 여러 글에서 잘 드러난다. 콜린 윙필드(Colin Wingfield)는 “에드워드 호퍼-소외화의 화가(Edward Hopper – Painter of Alienation)”라는 그의 주목할만한 비디오에서 이러한 ‘소외’(Alienation )를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한가지만 중요한 시대다 – 기계에 발 맞추기다… 인간을 기계류에 맞춰 절하시키는 행동은 소외가 3배로 불어난 심리적 효과를 초래했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인간은 동료들로부터 소외되었고 스스로에게서도 소외되었다.”

역사는 통제 중심적인 고용주들의 시도가 비극적 결말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11년 3월 25일 뉴욕시의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Triangle Shirtwaist) 공장에서 일하던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된 146명의 직원들이 사망했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기업 측은 잦은 결근, 허가되지 않은 파손과 도난을 줄이기 위해 공장 문을 잠궜으며,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갇힌 채 죽어가야 했다.

물론 이러한 과거의 방식들이 폐기됐다. 실제로 세계 대부분에서 작업 환경은 엄하게 규제되고 있으며 노동자 다수는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압은 여전히 선호되는 대응 방식이다. 우리는 비공개 동의서의 세상, 모든 이슬람교 신자를 추방하자는 정치인이 최고에 오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다시 디지털 반동분자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만약 파악할 수만 있다면 기업은 디지털 반동분자들을 해고하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디지털 반동분자를 색출해 제거하면 해결될 문제일까?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나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소외에 대항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다: 막강한 권한이 개인에게 부여되는 시대에 관리자들은 “디지털 반동분자들이 나에게 이야기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물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소통하라는 이야기다. 이를 신조로 오랜 성공의 역사를 가진 조직이 바로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다. 웨스트 포인트의 교수진들은 장교 후보자들이 손쉽고 격의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공개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정규 근무 시간을 넘어 이뤄진다.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 거슬린다면 우리는 기꺼이 함께 논의할 수 있다.” 웨스트 포인트가 지향하는 문화가 바로 이것이다.

*Thornton A. May 는 연사이자 교육가, 컨설턴트로 활약 중인 미래학자다. ciokr@idg.co.kr 



2016.09.19

칼럼 | 디지털 반동분자들

Thornton May | Computerworld
개개인이 마음만 먹으면 기업의 디지털화 노력을 크게 방해할 수 있는 시대다. 기업이 쓸 수 있는 대처법은 과연 무엇일까?


Credit: Pixabay

오늘날 기업 다수의 고민 꺼리는 디지털 디스럽션(digital disruption)이다. 디지털 붕괴 현상의 주역이 되건 또는 피해자가 되지 않는 법을 찾고 있건 머리 한 구석에는 디지털 디스럽션이 자리하고 있다. 몇몇은 두 상황 모두에 처해있다.

그들의 직원 대부분도 같은 관점이다. 오하이오 주립대학과 캘리포니아 주립대 샌디에이고 캠퍼스의 조사에 따르면, 붕괴의 주체가 되거나 붕괴로부터 살아남으려는 기업의 경우 직원의 89~97%가 디지털 붕괴/붕괴 방지 프로그램을 지지하고 있었다.

이는 엄청난 수치다. 단 3%에서 11%의 직원들만이 디지털 디스럽션 이니셔티브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이들을 ‘디지털 반동분자’(digital dissidents)라고 칭하겠다.

그러나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기는 하지만 그들의 영향력은 그렇지 않다. 현대 시대에 이러한 반동분자들이 가진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디지털 기술 혁명이 오히려 그들에게 힘을 실어준 경향도 있다.

사실 잠재력에 대해 생각해보면 3%가 아주 큰 숫자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뉴욕타임즈 칼럼리스트 토마스 프리드먼(Thomas Friedman)은 곧 출판될 그의 책 ‘늦어서 고마워: 가속의 시대에서 성공하는 긍정론자의 가이드’(Thank You for Being Late: An Optimist’s Guide to Thriving in the Age of Accelerations)에서 이에 대해 기술했다. .

그는 이 책에서 “한 명이 가진 힘(Power of One)”이라는 용어를 언급했다. 예를 들자면 NSA에 대해 하급 계약자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이 해낸 일을 떠올리면 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정도 붕괴를 일으키려면 NSA 국장 정도는 되어야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는 디지털 혁명으로 인해 하급 계약자도 커다란 파장을 일으킬 수 있게 됐다.

기업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은 디지털 반동분자들의 힘을 상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다. 많은 고용주들은 이를 통제할 방법을 찾고 싶어한다. 어쩌면 위협이나 부정적 인센티브를 떠올릴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책략은 궁극적으로 부질없다는 점은 지난 2세기 동안 충분히 입증돼 왔다.

예일 대학 교수 존 메리맨(John W Merriman)은 산업혁명을 산업가(industrialists)들이 노동자들에게 원했던 대로 마음껏 일을 시킬 수 있었던 시기로 보고 있다.

가령 고급 도자기 제조 사업가 조시아 웻지우드(Josiah Wedgewood)는 산업 시대적 규율을 보다 발 빠르게 적용시킨 인물이다. 1800년 직전 그는 직원들을 항상 일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오래 고심했다. 그와 그의 동료 산업가들은 노동자들이 돌아다니고 장난치는데 시간을 쓰는 것을 막는데 아주 신경 썼다. 웻지우드의 궁극적 목표는 “두 손의 손가락들”처럼 그의 명령에 따르는 작업자들이었다.

그와 다른 산업가들은 그들의 관점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인간다음을 잃어야 했다. 이러한 사실은 19세기 디킨스(dickens)와 졸라(Zola)같은 작가들이 공장과 탄광의 비인간성에 대해 기술한 여러 글에서 잘 드러난다. 콜린 윙필드(Colin Wingfield)는 “에드워드 호퍼-소외화의 화가(Edward Hopper – Painter of Alienation)”라는 그의 주목할만한 비디오에서 이러한 ‘소외’(Alienation )를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다.

“이제는 한가지만 중요한 시대다 – 기계에 발 맞추기다… 인간을 기계류에 맞춰 절하시키는 행동은 소외가 3배로 불어난 심리적 효과를 초래했다: 인간은 자연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인간은 동료들로부터 소외되었고 스스로에게서도 소외되었다.”

역사는 통제 중심적인 고용주들의 시도가 비극적 결말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1911년 3월 25일 뉴욕시의 트라이앵글 셔트웨이스트(Triangle Shirtwaist) 공장에서 일하던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된 146명의 직원들이 사망했던 사건이 대표적이다. 기업 측은 잦은 결근, 허가되지 않은 파손과 도난을 줄이기 위해 공장 문을 잠궜으며, 이로 인해 피해자들은 갇힌 채 죽어가야 했다.

물론 이러한 과거의 방식들이 폐기됐다. 실제로 세계 대부분에서 작업 환경은 엄하게 규제되고 있으며 노동자 다수는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근무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강압은 여전히 선호되는 대응 방식이다. 우리는 비공개 동의서의 세상, 모든 이슬람교 신자를 추방하자는 정치인이 최고에 오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리고 다시 디지털 반동분자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만약 파악할 수만 있다면 기업은 디지털 반동분자들을 해고하려 들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디지털 반동분자를 색출해 제거하면 해결될 문제일까?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나는 당연히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소외에 대항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실현가능성이 높을 수 있는 방법은 간단히 말해 다음과 같다: 막강한 권한이 개인에게 부여되는 시대에 관리자들은 “디지털 반동분자들이 나에게 이야기하려는 메시지는 무엇인가?”를 물을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소통하라는 이야기다. 이를 신조로 오랜 성공의 역사를 가진 조직이 바로 웨스트 포인트(West Point)다. 웨스트 포인트의 교수진들은 장교 후보자들이 손쉽고 격의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공개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정규 근무 시간을 넘어 이뤄진다. “당신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만약 당신이 무언가 거슬린다면 우리는 기꺼이 함께 논의할 수 있다.” 웨스트 포인트가 지향하는 문화가 바로 이것이다.

*Thornton A. May 는 연사이자 교육가, 컨설턴트로 활약 중인 미래학자다. ciokr@id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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